정훈희 음악과 삶, 60년을 노래한 전설의 진짜 이야기
16살 소녀가 부른 '안개' 한 곡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1967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훈희는 단 한 번도 노래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70대가 된 지금도 매주 무대에 서는 그녀를 보며 우리는 묻게 되죠. 도대체 어떤 힘이 그녀를 이토록 오래, 이토록 빛나게 만드는 걸까요? 🤔
단순한 히트곡 몇 개로 설명할 수 없는, 정훈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삶과 음악 인생을 지금부터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음악, 그리고 16살의 데뷔
정훈희의 삶에서 음악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습니다. 1951년 부산 아미동에서 태어난 그녀는 피아니스트 아버지, 밴드 마스터 작은아버지, 기타리스트 오빠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말을 배우기도 전에 팝송을 따라 부를 정도로 음악은 그녀의 일부였죠.
1967년 여름,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남대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연습하던 17살 소녀를 우연히 본 작곡가 이봉조는 단번에 그녀의 재능을 알아봤습니다. "가시나 쪼깐한 게 건방지게 노래 잘하네"라는 그의 첫마디가 정훈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봉조가 건넨 '안개'는 40만 장이 넘게 팔리며 대한민국을 휩쓸었고, 데뷔 4개월 만에 각종 신인상을 휩쓴 정훈희는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 인생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7년, 그리고 다시 피어난 꽃
1975년,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정훈희는 대마초 파동에 휘말렸습니다. 훈방 조치를 받았음에도 방송 출연이 금지되었고, 이후 연애 스캔들까지 겹치며 1982년까지 만 7년간 활동이 막혔습니다. 가수로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를 강제로 멈춰야 했던 그 시간은 정훈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75년 칠레 국제가요제에서 '무인도'로 최고가수상을 받으며 실력을 증명했고, 1978년 발표한 '꽃밭에서'는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영원한 명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훈희는 이 시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비바람에 꺾이고 휘청였지만, 다시 허리를 세우고 꽃을 피웠습니다." 😊
| 연도 | 주요 업적 |
|---|---|
| 1967 | 데뷔곡 '안개'로 신인상 휩쓸며 데뷔 |
| 1970 | 도쿄 국제가요제 가수상 수상 |
| 1971 | 아테네 국제가요제 아시아 유일 수상 |
| 1975 | 칠레 국제가요제 최고가수상 |
| 1978 | 명곡 '꽃밭에서' 발표 |
| 2022 | '안개' 영화 '헤어질 결심' OST로 재조명 |
70대에도 현역, 부산 바닷가 라이브카페의 기적
2025년 현재, 만 74세의 정훈희는 여전히 현역입니다. 남편 김태화와 함께 운영하는 부산 기장군의 '정훈희·김태화의 꽃밭에서' 라이브카페에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 200명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25년 전 남편이 매입한 낡은 집을 보며 볼멘소리를 냈던 정훈희는 이제 그 선택에 감사합니다.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 집에서 마음껏 노래하자"던 남편의 말은 현실이 되었고, 그 무대는 정훈희의 목소리를 70대까지 또렷하게 유지시켜주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주말마다 무대에 서며 항상 연습된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정훈희는 말합니다. 동료 가수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건강한 목소리로, 그녀는 오늘도 노래합니다.
감사하는 삶, 정훈희가 전하는 메시지
70대가 되어서야 정훈희는 진정한 감사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젊었을 때 왜 지금처럼 철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조금 더 일찍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입니다.
2024년 발매한 신곡 '흔들리며 피는 꽃'에는 그녀의 이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인용한 이 곡은 "비바람이 불어 꺾이고 휘청이기도 했지만, 다시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꽃을 피우고 싶다"는 정훈희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정훈희의 생활 신조는 명확합니다. "해결되지 못할 고민이라면 끌어안고 살지 말자. 주신 것도 다 못하면서 안 주신 것까지 욕심부리면 되나요?" 이제 그녀는 며칠씩 고민하던 것들을 한두 시간 만에 털어버리고, 좋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노래는 계속된다, 정훈희의 앞으로
정훈희에게 노래는 끝이 없습니다. "서서 부를 힘이 없으면 앉아서 부르면 되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부르는 게 목표입니다." 그녀는 벌써 다음 곡 '할미꽃'을 준비 중입니다. "이렇게 예쁜 빛을 뽐내는 할미꽃을 본 적 있느냐"고 물으며 함께 춤추자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천직이라고 말하는 가수의 길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정훈희.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진짜 가수가 되길 잘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들을 즐겁게 해주고, 그러면서 돈까지 버니까요. 딴따라로 태어나 행복합니다." 😆
인생에서 꽃은 한 번 피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죠. 16살에 데뷔해 70대까지 노래하는 정훈희의 삶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녀의 노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그 노래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